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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력보살 해인사 영암선사

홈리더 15-08-16 08:57 ( 조회 6,570 )

중창불사. 공사분별. 십부지. 이사를 겸비한 원력보살 영암선사

이사무애 불사

 

진화스님<현 봉은사 주지>

오늘날 영암스님이 없었다면 봉은사 자체가 지금 현재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봉은사하고 영암스님은 떼어낼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사실 이 절이 1300년 전에 창건되었지만 이만한 사격을 가지게 된 것은 영암스님의 지대한 공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70년대에 강남개발이 되면서 봉은사 땅이 정부의 여러 외적 내적인 압력에 의해서 땅이 팔려나가고 그런 과정 속에서 봉은사가 위기에 놓였을 때 스님이 봉은사에 오셔가지고 소임을 맡으시면서 팔려나간 땅을 찾기 시작합니다.

영암스님이 봉은사 중창불사를 하시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람 배치나 또 봉은사에 오면 신도님들이 편안하게 기도할 수 있는 어떤 것이 필요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시고 아마 미륵대불 조성 계획을 세웠던 것 같습니다. 미륵대불 조성할 때도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여러 해 걸쳐서 불사모연도 하고 또 부처님 조성에 대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시고 한 끝에 지금의 저 모습으로 대불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저렇게 모셔놓고 나니까 이제 여러 사람들이 와서 새벽이나 밤이나 미륵대불 앞에서 편안하게 기도하고 어떤 분은 오셔가지고 저 미륵대불 앞에 앉아있는 것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아주 잘 모신 것 같아요.

입적하시고 나서도 영암스님은 별로 가진 게 없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쉽게 말해서 거의 무소유로 사셨다고 할 정도로 돌아가시고 나서 보니까 뭐 가진 게 없었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세요. 그만큼 스님께서는 출가정신에 입각해서 수행하면서 사시지 않으셨나 보통 우리가 이렇게 큰 절에 주지를 하면 돌아가시고 나서 여러 가지 안 좋은 이야기도 있고 그런데 영암스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다 그래요. 그 하나만 봐도 저희들에게 큰 귀감이 되시는 분이죠.

오늘 한국불교의 현실에 대해서 다시 영암스님의 사신 모습에 비춰서 생각해보면 저는 많은 것을 영암스님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절을 지키기 위해 참으로 그때 당시에 노력을 많이 하셨고 그 노력하신 만큼 저희들이 봉은사에 살면서 그분의 뜻을 기리는 것도 되지만 그분의 뜻을 이어서 봉은사가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으로 큰 역할을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밀운스님<영암스님 참회상좌>

16,500평인가를 상공부 땅으로 다 넘어가 버리고 땅이 한 평도 없었어요. 그런 것을 영암스님이 오셔가지고 그걸 살리려고 애를 많이 썼죠. 그런데 이미 주택조합으로 다 넘어갔지. 봉은사는 돈도 없지. 그냥 되지를 않는 거야.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7년 걸렸어요. 7년 고생해가지고 봉은사 땅 2만평을 사서 오늘날 봉은사가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그때 이걸 못 샀으면 봉은사 그냥 다 날라가 버리는 거예요.

공금에 대해서는 10원 한 장도 써서는 안 된다.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이런 의도입니다. 심지어 해인사에 살고 계실 적에 태정스님이라고 재무를 봤는데 자기 은사스님의 제사를 지내는데 돈을 내긴 내요. 사중에서 안 주면 우리가 부탁하면 얼마씩 내고 이제 제사를 지내잖아요. 그런데 참기름을 썼어요. 어째 너의 스승 제사에 사중 참기름을 넣었냐고 까지 문책하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공금에 대해서는 아주 철두철미한 분이에요. 살림을 그렇게 잘 사셨다. 공과 사가 분명한 분이다. 이렇게 사신 분이에요.

수행자로서는 또 하자가 없는 것이 영암스님은 예불공양에 또 안 빠져요. 그리고 또 염불을 잘하십니다. 그러니까 누가 부탁을 해도 아무리 어려운 사람이 부탁을 해도 보시 안 줘도 가서 염불 다 해주고 그래요.

강경한 말씀은 별로 안 하셔. 부드럽게이렇게 넘기시지 자기 고집을 세워서 하지는 않습니다. 절대. 남의 말을 듣는 편이죠. 듣는데 쉽게 믿지를 않아 듣긴 듣는데일단 의심을 하고 봐요. 저놈 잘 할 것인가 못 할 것인가 그러고 나서 믿지 당신이 크게 주장하는 건 없어요. 그러면서 일 처리해 나가니까 모든 면이 부드러워 모시는데 철두철미하게만 해드리면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을 그리 가리지 않아요. 그러니깐 젊은 사람들이 조그만 절을 해가지고 주지를 하면서 거기 천도재라든가염불을 좋아하시니까 그걸 가세요. 그런데 상계동에 용화사라는 절이 있어요. 상계동에 가면 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거기서 아마 천도재 지내달라고 해서 가셨어요. 여름에 거기 갔다 내려오다가 혈압이 나면서 중풍이 걸렸어요. 그래가지고 경희의료원에 입원하셔 가지고 그 병으로 돌아가셨지.

 

대운스님<영암스님 은법상좌>

봉은사 땅이 11개 국영기업체에 등록이 돼 있어요. 거 얼마나 힘들겠냐 이거야. 11개 기업체에 전부다 이사회를 붙여가지고 봉은사로 환원하자 라고 이사회를 다 붙였어요. 그래가지고 대통령한테도 탄원서 내고 국회에도 내고 각 기관에 다 냈어요. 그런데 그때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에요. 그분이 뭐라 했냐 면은 공문을 내리기를 즉이처리하라고 내렸어요. 즉이처리하라는 소리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 사무 보는 사람들은 그냥 알아먹더라고요. 옛날 그대로 환원하라.

 

十不知

간식 모르고 차 모르고 과일 모르고 구경 모르고 낮잠 모르고 서화 모르고 골동품 모르고 화초 모르고 여행 모르고 떡 모른다.

십부지 10가지 모르는 것. 그걸 진짜로 지키신 분이 영암스님이다. 그래서 계행도 청정하고 수행도 열심히 하신 분이다. 이렇게 나는 칭하고 이런 10가지 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하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제 영암스님을 모실 적에 그 10가지 모르는 것 중에 낮잠 모르고 라고 있거든요. 낮잠을 과연 안 자는가? 내가 13년 간을 모시면서 스님께서 누워있는 것을 못 봤어요. 그러니까 낮잠 모르는 것이죠. 그래서 하루는 영암스님이 방에서 나오시지를 않아요. ! 이제 됐다. 이제 스님이 누워있는 것을 한 번 봐야 되겠다 하고 손에다가 침을 발라가지고 문구멍을 뚫어서 봤어요. 그랬더니 스님이 안 주무시고 의자에 앉아계세요. 염불하고 계시더라구요. 염불 참선하고 나는 그래서 영암스님이 아프기 전에는 누워있는 거를 못 봤다. 그런 것 보면 그 10가지는 아주 철저하게 지키신 분이다. 그리고 수행에는 그 계행에 들어가는 거거든요. 계행에 철저하시고 수행에 철저하신 스님이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영암스님이 또 운동을 좋아하셔요. 운동을 좋아해 가지고 축구장을 3개를 다듬었어요. 월정사에 한 군 데 다듬고 통도사 한 군 데 다듬고 해인사 다듬고 그런데 왜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장을 만들었느냐. 나는 해인사에 많이 살았기 때문에 해인사는 점심만 먹으면 축구를 해요. 학인스님들이 축구를 해. 영암스님이 하라고 하는 거에요. 축구를 하라고 왜 하라고 그러느냐 산에 불 나면 빨리 뛰어가서 불을 먼저 꺼야 된다는 거에요. 이게 뭐냐 그러면 산림보호지 요즘 말하는 환경보호 그래서 해인사는 그때 당시에 보면 갈퀴를 엄청 많이 만들어놔요. 불갈퀴 불끌이 갈퀴라. 그래 가지고 어디 불 났다 그러면 학인들이 갈퀴 하나씩 들고 산으로 뛰어가서 금방 불을 꺼버립니다. 금방 끈다는 건 어떻게 내가 아느냐 그러면 송광사에 내가 좀 있었거든요. 송광사는 불 나면 잠을 자가면서 불을 꺼요. 밥을 해 먹어가면서 식구가 적으니까 그런데 해인사는 불을 끄는데 한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이면 다 꺼버려요. 다리에 힘을 올려가지고 빨리 올라가서 그냥 불갈퀴로 막 다 긁어서 꺼버리는 거에요.

분명한 거조금도 허점이 없는 것이 그분의 성격이에요.

옛날 부도들 보면 오래 돼 가지고 조각조각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고 그러거든요. 사방에 흩어져 가지고 묻히고 그랬는데 그걸 좀 방지하는 의미에서 기단석을 아주 크게 했습니다. 그 내부에 보면 복장이라 그러죠 복장에 넣었는데 넣은 것이 뭐냐 그러면 발우가 있어요. 영암스님이 오랫동안 쓰시던 발우 옛날에 속되게 말하면 비구대처 분규가 있을 적에 목발우를 전부 다 없앤 적이 있어요. 그래서 철발우 토발우 했는데 그때 통도사에 계시면서 사기발우를 만드셨어요. 그래가지고 그 사기발우를 입적하실 때까지 쓰셨어요. 그걸 저에게 주셨는데 가사하고 나한테 넘겼는데 내가 가지고 있으면 내가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니고 놔두면 누가 반찬그릇 해버릴까 봐 그게 걱정이에요. 내가 죽으면 그래서 이것을 오래 보존해야 되겠다 사기니까. 그래서 사기 발우를 넣고요 유골도 일부를 넣었습니다. 여기 부도탑 안에. 그래서 두 가지가 들어 있죠. 

 

법인스님<영암스님 상좌>

공사분별 공사가 분명하다. 한쪽 주머니는 공금으로 다른 한쪽 주머니는 사금으로 어디 출타했다가 월정사로 들어가시는데 월정사 입구 그 어느 지역에서 보니까 공금은 있는데 사금은 없어서 그래서 몇 십 리를 걸어서 가셨다고 공금을 안 쓰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어장으로서는 3대 인물 중에 한 분이시거든 첫째 인물이 영암스님이시고 둘째 인물이 삼선교에서 쭉 들어가면 석산스님이라고 계셨어. 범어사 출신인데 그 석산스님이 둘째고 세 번째는 여기 그 본사가 어디지? 마곡사 일행스님 세 분이 키가 똑같고 생긴 것도 똑같고 그런데 세 분이 딱 서면 49재 생전예수재 수륙재 할 거 없이 막 일등으로 세 분 음성이 최고에요. 아주 그 어산 멤버야.

 

박병원 교수<영암스님 재가제자. 조카>

스님을 만나러 갔을 때 다른 분들하고 이렇게 대화를 하는 걸 보면 굉장히 유머러스한 평소에 대화가 그런 식으로 나와서 상당히 부드럽게 접근할 수 있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평소에 하신 말씀이 스님조카 사람 되기 어렵다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삼촌이 스님이신데 스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면서 세상을 살아가야지 그릇되게 생활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말씀으로 받아들여서 저는 나름대로 올곧게 살려고 노력했죠.

 

영암스님 임종게

法身本無生 四大元無實 色空無二道 淸風自去來

법신에는 본래 태어남이 없고 육신에도 본래 실한 것이 없네

색과 공이 둘이 아니거늘 맑은 바람만이 스스로 오고 가네.

6. 이사를 겸비한 원력보살 영암스님 <인연 그리고 법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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